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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안동 하회마을과 경주 양동마을

by 리얼캐쳐 2024. 1.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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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하회마을의 유래와 특징

안동 하회마을은 '하회 민속 마을'이라고 도 불리며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에 있습니다. 조선 중기의 문신인 서애 류성룡의 고향으로 풍산 류씨 집안이 모여 살며 씨족 마을을 이루었고 지금도 '류' 씨 성을 가진 주민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원래는 김해 김씨와 광주 안씨가 먼저 정착하여 살고 있다가 류씨인 주민들이 늘어나면서 김 씨와 안 씨 사람들이 다른 지역으로 이주해 가고 주로 류씨 집안이 살게 되었다고 합니다.

마을을 감싸고 흐르는 낙동강의 모습을 본떠 '하회(河回)'라고 이름 지어진 하회마을에는 조상들이 생활했던 전통 한옥과 초가집이 지금까지 그대로 남아있는데, 보통 집을 정남향이나 동남향으로 배치하는 다른 마을과 달리 하회마을의 집들은 방향이 일정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마을의 중앙에 있는 600년 된 느티나무를 중심으로 강을 향해서 지어졌기 때문입니다. 집의 배치에 있어서 또 다른 특징은 큰 기와집을 가운데 두고 초가집들이 원형 모양으로 놓여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자연과 조화를 이루면서 조선 시대 사회구조를 보여주는 마을의 배치방식과 하회탈을 비롯한 전통 민속공예품, 병산서원과 한옥, 전통 민속놀인 하회탈춤과 세시풍속 등 전통적인 유교문화를 전승해 온 하회마을은 그 가치를 인정받아 2010년에 경주 양동마을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하회마을

하회마을의 문화유산

하회마을의 민속놀이에는 선비들의 놀이인 선유줄불놀이와 서민들의 놀이인 별신굿 탈놀이가 있습니다. 선유줄불놀이는 뱃놀이와 불꽃놀이가 어우러진 풍류놀이로서 음력 7월에 선비들이 나룻배를 타고 술을 마시면서 경치를 즐기면 흥을 돋우기 위해 쇳가루와 소금을 넣은 봉지를 공중에 줄로 매달아 불을 붙여 불꽃이 튀게 하여 장관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줄불놀이입니다. 이와는 달리 별신굿 탈놀이는 음력 정월에 서민들이 마을의 서낭신에게 무병과 평안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낸 후에 하회탈을 쓰고 하는 가면극으로 한국의 탈춤 중에 가장 오래되었습니다. 별신굿 탈놀이는 조선의 엄격한 신분제도 아래에서 비판과 풍자를 통해 양반의 허구성과 종교의 타락, 서민들의 삶의 애환을 표출하였고 양반들은 서민들의 삶을 이해하고 불만을 해소해 줌으로써 서로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할 수 있었습니다. 

병산서원은 고려 말 풍산 류씨의 사학인 풍악 서당을 1572년에 류성룡이 안동으로 옮겨와 후학을 양성하던 곳인데 1863년에 사액서원이 되었습니다. 이 밖에도 류성룡의 생가인 '충효당'을 비롯하여 양진당, 작전 고택, 북촌댁, 남촌댁 등의 양반들이 거주했던 가옥들이 국가민속문화재로 남아 있습니다.

경주 양동마을의 위치와 특징

양동마을은 2010년 안동 하회마을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조선시대의 양반 집성촌으로 경상북도 경주시 강동면 양동리에 있습니다. 양동마을은 양반 씨족 마을의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는데 씨족 마을이란 유교문화의 영향으로 재산과 제사를 집안의 장남이 상속하는 장자상속의 전통에 따라 같은 성씨를 가진 부계 혈연집단이 한 마을에서 대대로 모여 사는 형태를 말합니다. 보통 한 가문이나 두 가문이 마을을 구성하여 마을 일을 관장하는데 양동마을은 여주 이씨와 경주 손씨의 집성촌으로 현재까지 그 후손들이 이곳에서 살고 있습니다. 

풍수지리적으로 명당에 속하는 양동마을은 마을 뒤의 설창산 문장봉에 뻗어 내린 네 줄기의 능선과 골짜기의 모양이 한자 '물(勿)'의 형태를 하고 있기 때문으로 조선의 유명한 지리지인 '택리지'에도 실지로 언급되었습니다. 이러한 풍수지리에 따라 지형의 경사에 맞춰 집을 짓고 집의 방향을 조정함으로써 전체적인 마을의 모습이 자연과 잘 어우러져 있습니다.   

양동마을 송첨종택

양동마을의 역사와 의의

조선시대 양반사회에서는 남자와 여자가 결혼하면 여자가 남자의 집안에 가는 것이 원칙이었는데 이것은 조선 중기 이후부터였고 조선 초기에는 통상적으로 남자가 여자의 집안에 들어가서 사는 '처가입향'의 형태였습니다. 양동마을은 '처가입향'의 전통으로 형성된 마을로서 여주 이씨인 여자와 풍덕 류씨 남자가 결혼하면서 풍덕 류씨 집안이 정착하고 그 후에 풍덕 류씨인 여자와 경주 손씨인 남자가 결혼하여 경주 손씨 집안이 들어와서 뿌리를 내리는 등 집안끼리의 결혼을 통해 씨족 마을의 전형적인 모습을 띠게 됩니다. 조선 중기 이후 유교문화가 강화되고 성리학의 대가인 이언적을 비롯하여 국가적으로 명성이 높은 인물들이 나오면서 '처가입향'의 형태는 사라졌고 여주 이씨와 경주 손씨 가문은 명문가로서 대대로 많은 학자와 관료, 독립운동가를 배출하였습니다. 현재까지 남아 있는 씨족 마을 중에 가장 규모가 크고 오래된 양동마을에는 1484년에 지어졌다는 '송첨종택(서백당)'등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된 기와집들과 사당과 정자, 옥산서원과 동강서원이 남아 있는데 한국의 전통적인 씨족 마을의 형태와 가옥의 구조를 온전하게 보존하고 있고 조선 전기의 학문과 예술작품 및 건축양식들의 우수성과 보존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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