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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베이징과 선양의 명과 청시대 황궁

by 리얼캐쳐 2024. 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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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금성의 뜻과 의의

자금성

현재 남아있는 궁궐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자금성은 전통적인 중국 궁궐의 형태로 1406년 짓기 시작하여 1420년에 완공되어 명나라와 청나라 왕조의 황제들이 5백 년 동안에 걸쳐서 궁궐로 사용하였습니다. 1576년에 공식적으로 '자금성'이란 이름이 사용했는데 예로부터 하늘을 대신하여 천하를 다스리는 사람인 '천자'가 살고 있다는 '자미궁'에서 '자'를 따왔고 황제의 허락 없이는 아무도 들어오거나 나갈 수 없다는 금지의 뜻으로 '금'을, 그리고 도시를 뜻하는 '성'을 사용해서 자금성이라고 지었습니다. 당시에는 황제를 신성시하고 황제와 황족이 사는 궁궐을 신성불가침의 공간으로 인식하는 이름이었으나 현재 중국에서는 옛날 궁궐을 의미하는 '고궁'으로 불립니다. 자금성은 규모와 조형미에서 있어서 중국 명과 청나라 시대의 대표적인 황궁이며 1987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자금성의 시대적 변천

명나라 시대의 영락제가 즉위하여 수도를 난징에서 베이징으로 천도할 때 100만 명 이상의 인력을 동원하여 14년간 건축하여 1420년에 완공하였으나 5개월이 지날 무렵 벼락이 쳐서 자금성의 많은 전각들이 소실되었습니다. 19년 후인 1440년에 재건된 자금성은 그 후 1557년과 1597년 2번의 화재가 발생하였고 특히 1597년 만력제 때의 화재는 중요 전각들이 불타 명나라 역사상 최대 피해를 보았으며 소실된 전각들을 모두 재건할 수 없어서 황제의 왕좌가 있는 태화전만 겨우 재건할 수 있었고 1627년에 완공되었습니다.

1644년 명나라가 멸망하고 들어선 청나라는 새로운 궁궐을 건축하지 않고 전각들을 약간씩만 수리한 후 자금성을 그대로 사용하였고 원래 청나라의 정궁이었던 선양 고궁은 별궁으로 사용하였습니다. 청나라는 베이징에 입성한 이후로도 계속해서 영토 전쟁을 했기 때문에 명나라 시대의 화재로 소실된 자금성의 건물들은 오랜 기간 방치되어 있다가 1683년부터 1695년까지 재건 공사가 시행되었고 청나라의 전성기였던 건륭제가 통치하던 1735년에서 1796까지는 자금성의 전각과 화원들을 화려하고 우아하게 고치기도 하였습니다.

1912년 중화민국이 수립되고 1924년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인 푸이가 폐위됨에 따라 1925년 고궁박물원이라는 이름으로 황실의 보물과 궁중 유물들을 보관하고 전시하고 있었는데 만주사변과 중일전쟁을 피해 유물들은 난징과 상하이로 옮겨졌고 그중 가치 있는 것들을 국민당의 장제스가 타이완으로 가져갔습니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들어서고 1966년 문화 대혁명 때 봉건주의의 상징물로 여겨진 자금성은 파괴될 위기에 처했으나 1970년대 이후 문화재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면서 자금성을 보수하고 규모도 늘려 고궁박물원으로서 타이완 고궁박물원과 비슷한 수준으로 성장하였습니다. 

자금성의 규모와 건축물

동서로 길이가 753m, 남북으로 길이가 961m인 직사각형 구조를 가진 자금성은 980개의 건물과 8886개의 방이 있으며 자금성을 둘러싸고 있는 벽에는 동서남북 방향으로 각각 동화문, 서화문, 오문, 신무문이 있는데 이 중 오문은 자금성의 정문입니다. 오문에는 5개의 문이 있는데 가운데 문은 황제만이 지나다닐 수 있었고 국왕의 혼례 때 황후가 들어오거나 과거시험에서 급제한 사람들이 퇴궐할 때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청나라 마지막 황제인 푸이가 자금성에서 떠날 때 사용한 문은 신무문입니다. 자금성 벽의 각 모서리에는 각루가 있어 궁성을 수비하는 데 사용되었으며 지어진 당시의 모습이 지금까지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자금성은 공식적인 의례가 행해지는 외조와 황제의 사적인 공간이 내조로 이루어지는데 오문으로 들어가서 태화문을 지나가면 자금성의 정전인 '태화전'이 나옵니다. 태화전은 자금성 내에서 가장 큰 규모를 가지고 있으며 명나라와 청나라 황제들의 즉위식이 거행된 장소이기도 합니다. 이 외에도 중화전, 보화전, 무영전, 문화전, 홍의각, 체인각 등의 전각들이 있으며 황제의 사적 공간이자 황실 가족이 거주하던 내조에는 건청문, 건청궁, 교태전, 곤녕궁, 양심전 등이 있습니다.

선양 고궁의 역사와 주요 건축물

선양 고궁

후금을 세운 누르하치가 1625년에 수도를 선양으로 천도한 후 짓기 시작하여 1636년 완성된 선양 고궁은 홍 타이지가 후금에서 청나라로 국호를 바꾸고 황제로 즉위하면서 청나라의 정궁으로 사용하였습니다. 중국 랴오닝성 선양시에 자리 잡고 있으며 자금성의 면적보다 훨씬 작고 자금성의 형식에 만주, 몽골족과 티베트 양식이 첨가되어 있으며 청나라가 명나라를 멸망시키고 베이징을 점령하여 자금성을 정궁으로 사용하면서 별궁으로 남게 됩니다.

자금성과 마찬가지로 1924년 푸이의 폐위에 따라 궁궐의 지위가 없어지자 1926년에 박물관으로 사용되었고 1986년에 '선양 고궁박물원'이라고 명칭이 변경되었습니다. 

선양 고궁은 지어진 시기와 구조에 따라 동원, 중원, 서원으로 나눠지는데 누르하치 시대에 지어진 동원에는 정전인 '대정전'이 있고 유목민의 이동식 텐트를 모방하여 팔각형의 모양을 한 것이 특징입니다. 홍 타이지 시대에 지어진 중원에는 사신 접경에 사용되던 '숭정전'이 있으며 서원에는 건륭제가 편찬한 '사고전서'를 보관하기 위해 1781년에 지은 '문소각'이 있습니다. 

선양 고궁의 건축물은 청나라 시대 황궁의 모습과 문화를 잘 보존하고 보여줌으로써 2004년에 자금성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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