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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런던탑

by 리얼캐쳐 2024. 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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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탑

런던탑의 건축 목적과 위치

흔히 사람들이 부르는 런던탑(Tower of London)은 본래 명칭이 '국왕 폐하의 궁전이며 요새인 런던탑(His Majesty's Royal Palace and Fortress of Tower of London)'으로 잉글랜드의 윌리엄 1세 때 지어져 이름처럼 요새와 궁전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윌리엄 1세는 잉글랜드의 역대 왕조 중의 하나인 노르만 왕조의 창시자로서 원래 프랑스 북서부의 노르망디 지방을 기반으로 한 노르망디 공작이었지만, 전쟁으로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며 잉글랜드를 정복한 후에 잉글랜드의 왕이 되었습니다. 전쟁에서 승리한 후 자신이 정복한 곳에 성을 만들어 나갔고 그 당시 앵글로·색슨인이 지배하고 있던 잉글랜드에서 가장 큰 도시였던 런던에도 요새 겸 왕의 궁전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런던탑을 축성하였습니다. 영국 런던 템스강의 북쪽에 위치하여 런던을 내려다보고 있으며 윌리엄 1세 때는 런던탑 중에서도 화이트 타워만 축성되었고 그 후 리처드 1세와 헨리 3세, 에드워드 1세를 지나면서 성벽과 탑을 쌓아서 더욱 견고한 요새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런던탑의 구조와 기능

1078년에 지어진 화이트 타워는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런던을 방어할 뿐만 아니라 노르만에 의해 정복당한 앵글로·색슨인의 반발을 막기 위한 기능도 있었습니다. 방어벽과 해자에 둘러싸고 있는 런던탑의 가장 중심에 있는 화이트 타워는 왕이 거처하는 건물인 '아성'으로서 높이 27m의 3층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노르만 양식으로 지어진 아주 견고한 석조 건축물인데 처음 지었을 당시에는 하얀색이 아니었으나 헨리 3세가 건물 벽을 하얀색으로 칠하면서 '화이트 타워'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방어와 생활공간의 역할을 동시에 했기 때문에 벽난로도 설치되어 있으며 예배실도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성에서 방어벽인 막벽으로 둘러싸인 공간을 '워드'라고 하는데 런던탑은 가장 안쪽에 화이트 타워가 있는 '이너모스트 워드'와 리처드 1세 때 만든 '이너 워드', 에드워드 1세 때 만든 '아우터 워드'로 나누어집니다.

이너모스트 워드는 화이트 타워에서 남쪽으로 템스강에 접해 있고 이너모스트 워드의 서쪽에 해자를 만들어서 이너 워드를 조성함으로써 런던탑은 2배로 넓어졌습니다. 헨리 3세 때 이너 워드에 방어벽을 쌓아서 증축해 나갔고 방어벽에 여러 개의 망루도 만들었습니다. 특히 '블러디 타워'는 템스강의 물을 런던탑으로 끌어오기 위한 수문이 있는 망루였는데 리처드 3세가 즉위하기 전, 글로스터 공작으로서 조카인 에드워드 5세의 섭정왕으로 있을 때 에드워드 5세와 그의 동생인 요크 공작 리처드가 런던탑에 갇힌 후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한 이후로 블러디 타워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헨리 3세 때 런던탑의 밖에는 '속박된 성 베드로 교회'라는 노르만 양식의 교회가 있었는데 이너 워드의 방어벽을 쌓아 그 교회까지 런던탑 안으로 편입시켜 교회에 유리창, 왕과 왕비를 위한 좌석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에드워드 1세와 16세기 헨리 8세에 의해 개축된 이 교회는 19세기에는 내부가 새롭게 꾸며지긴 했지만, 교회의 건물 구조는 헨리 8세 때의 모습으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에드워드 1세는 아우터 워드를 만들고 그 주위에 새로운 해자를 파서 런던탑을 증축했으며 왕립 조폐국을 런던탑으로 이관시켰습니다.

런던탑 감옥, 19세기 이후의 런던탑

런던탑은 리처드 2세, 헨리 6세, 앤 불린 등의 귀족과 왕족, 정치범 등 유명한 인물들을 가두고 처형했던 역사 때문에 감옥으로 유명합니다.

1100년에 래널프 플램바드 주교가 최초로 런던탑에 수감되었고 14세기에는 남작 부인이나 백작 등 귀족들이 런던탑에 수감되었으며 에드워드 3세는 스코틀랜드와 프랑스와의 전쟁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며 스코틀랜드 왕인 데이비드 2세와 프랑스의 왕인 장 2세를 포로로 잡아 런던탑에 가두었습니다. 15세기 백년전쟁과 장미 전쟁을 치르면서 왕이나 왕족, 귀족들이 런던탑에 수감되었고 16세기에서 17세기 동안 정치적, 종교적인 이유로 수감된 죄수들의 수가 극에 달하여 여러 가지 고문 도구들이 이용되기도 했습니다. 죄수들의 고문과 함께 사형도 집행되었는데, 런던탑 내부의 그린 타워에서는 공개로 처형하기 곤란한 죄수들을 처형했고 그 외의 경우에는 북쪽의 타워힐에서 집행되었습니다. 2차 세계 대전 중에는 전쟁 포로수용소로 사용되었고 히틀러의 부관이었던 루돌프 헤스가 구금되기도 했습니다.

19세기에 왕립조폐국과 군수품 사무소가 런던탑에서 다른 곳으로 이전하였고 2차 세계 대전 중에 폭격으로 화이트 타워를 제외하고 몇 개의 건물들이 파괴되었지만, 복구공사를 시행한 후에 대중들에게 공개되었습니다. 1988년에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으며 영국 역대 왕들의 왕관과 보석, 갑옷과 무기들을 전시함으로써 지금까지 영국의 인기 있는 관광지로 이름을 알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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